2017112003 김민정
일본 아베 총리는 일본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 인구의 8할을 넘겼다"며 "그 전쟁과 어떠한 관여도 없다"고 밝힌 뒤 "우리들의 아이와 손자,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지워선 안된다”라고 주장했다.[1] 그렇다면, 일본의 식민 지배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우리나라의 현 세대 또한 과거의 상처와 무관한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Fetal Trauma를 중심으로 설명하려 한다. Fetal trauma. 이를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태아 외상이다. 그러나 ‘임신 중 복부에 충격을 주면 태아는 두개골 부상을 입을 수 있다.’ 등의 신체적 외상이 교수님의 의도는 아닐 것이라 판단했다. 이는, 트라우마가 보통 外傷의 의미 보다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음에 기인한다. 따라서 나는 Fetal trauma를 ‘부모로부터 태아에게 유전된 트라우마’와, ‘임신 중 어머니가 받는(즉, 태아가 받는) 스트레스로 인한 트라우마’로 구분하여 그 존재에 대해 서술하려 한다.
다음세대로부터 자유로운 감정은 없다 : 트라우마의 유전을 통한 Fetal Trauma
미국 미시간대학 야체크 데비에크(Jacek Debiec) 박사의 쥐를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 유전 실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쥐에게 전기 충격을 반복적으로 준 후 박하향기를 맡게 해서, 쥐가 박하 향만 맡아도 공포 반응을 나타내게 했다. 이런 일종의 ‘공포 조건화 실험’을 시행한 이후 그 쥐에서 태어난 새끼를 어미와 분리한 후 박하향기를 맡게 했다. 그 결과, 새끼 쥐는 분명한 공포 반응을 나타냈다.[2]
또, 이런 트라우마의 승계가 인간에게 적용된 사례가 있다. 세계 2차대전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 예다. 뉴욕 마운트시나이 병원의 연구팀에 따르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자녀와 나치를 피해 숨어 살던 유대인들의 자녀는 유럽 이외 지역에서 지낸 유대인 가족의 자녀에 비해 스트레스 장애 위험이 증가했다. [3]
이 두 실험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비부호화 DNA’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우리는 이 부호화 되지 않은 98%의 DNA를 정크 DNA라고 불렀으며 "Junk DNA-Not So Useless After All.” 라고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 비부호화 DNA의 비율은 복잡한 유기체일수록 높아지며 인간에게 그 비중이 가장 크다. 또한 비부호화 DNA는 성격, 감정, 행동을 다음 세대로 유전한다.[4] Mark Wolynn의 「트라우마는 어떻게 유전되는가」에 따르면 이 ‘비부호화 DNA’에 부모의 감정과 기억이 새겨지게 된다. 즉, 기억이 유전자를 직접적으로 바꿔놓고 이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주장은 후성유전학을 통해 강화된다. 후성유전학은 유전자 발현 중 전통적인 의미의 대물림 현상(DNA 염기서열에서 기인한 대물림 현상)이 아닌 우리가 모르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대물림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후성유전학에서는 환경이 유전자에 남기는 흔적이 대물림된다고 본다. 실제로 ‘네덜란드 기근(Dutch Famine)’ 당시 어머니의 뱃속에 있던 태아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3배 높아지며, 조현증에 걸릴 위험이 2.7배가 높아지고, 당뇨병 등의 성인병에 걸릴 가능성이 일반인들에 비해 높았다. [5]
따라서 트라우마는 유전자에 그 흔적을 남길 수 있고 태아는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부모의 형질을 물려받으므로, 어머니의 뱃속의 태아 또한 트라우마를 지닐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할머니가 전쟁을 겪어서 뱃속의 태아는 큰 소리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라는 명제가 성립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Fetal Trauma의 첫번째 경우이다.
태내기억 : 태아는 기억한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의 얀 네이하위스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태아는 30주부터 10분정도의 단기 기억 능력을 가진다. [6] 예로, 신생아를 대상으로 처음 젖을 물릴 때 한 쪽 젖꼭지에는 양수를 바르고 다른 한 쪽 젖꼭지에는 양수를 바르지 않았다. 실험결과 총 30명의 신생아 중 27명의 신생아들이 양수를 바른 젖꼭지를 선택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태아가 뱃 속에서의 양수를 ‘기억’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비록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태아에게는 기억을 통한 학습 능력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또한 태아는 어머니를 통해 외부 세계를 지각한다. 따라서 임신 중 어머니의 기억과 감정은 태아와 공유되며 태아의 잠재 기억으로 남게 된다. 미국립과학아카데미보에 보고된 연구논문에서는 어머니가 임신 중에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태아는 일찍 늙는다는 주장이 있었다[7]. 비슷한 사례가 또 하나 있다. 2001년 9·11테러를 겪었던 뉴욕1700여명의 임산부들은, 재난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같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경험했다. 일년 후 과학자들이 이 임산부들을 조사했고, 그들의 아기에게서 PTSD에 취약한 생물학적 표시를 발견했다.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PTSD를 가진 어머니들은 그 조건의 취약성을 임신 중 그들의 자녀에게 전해줬음을 알 수 있다.[8] 따라서 태아가 어머니의 뱃 속에 있을 때 어머니의 트라우마는 태아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고, 나는 이것을 Fetal Truma의 두번째 경우로 정의내린다.
이런 두가지 양상의 Fetal Trauma 존재는 글 초두의 아베담화에 대한 내 대답이 시작되는 곳이다. 사회적 재앙에 대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차원을 넘은 사회의 문제이며, 유전자에 남는 흔적이나 태아의 직접적 경험(어머니를 통한)을 통해 한 세대를 넘어 후손들에게도 끊임없이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의 감정은 전 세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렇기에 아베 총리의 주장은 기각됨이 마땅하다.
[1] [연합뉴스] 아베담화 ‘과거형 사죄’…”차세대에 사죄 숙명 지워선 안돼.”(종합)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14/0200000000AKR20150814065953073.HTML) [2] [the verge] Fears can be inherited through smell (https://www.theverge.com/2014/7/28/5944797/fears-can-be-inherited-through-smell) [3] [연합뉴스] 홀로코스트 생존자 트라우마 자녀에게 유전된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08/22/0200000000AKR20150822028400009.HTML) [4] Danny Vendramini. 2004.08.22 “Noncoding DNA and Teem Theory of Inheritance, Emotions and Innate Behavior”] 《Medical Hypotheses 64》. [5] Ravelli AC, van der Meulen JH, Michels RP, Osmond C, Barker DJ, Hales CN, et al. Glucose tolerance in adults after prenatal exposure to famine. Lancet. 1998;351(9097):173-7. [6] [한겨레] (의과학레포트) 신통방통 뱃속 아기 ‘30주 태아도 기억력’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66828.html [7] [헬스코리아 뉴스] 임신 중 트라우마, 빨리 늙는다. https://hkn24.com/news/articleView.html?idxno=81590 [8] [TED] Annie murphy paul : What we learn before we were born? https://www.ted.com/talks/annie_murphy_paul_what_we_learn_before_we_re_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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